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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부탄에서 셋째 날을 맞았다. 오늘은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 푸나카로 여행지를 옮긴다. 6박 7일 동안 팀푸-푸나카-파로를 각 이틀씩 둘러보는 일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 적기로 하고.

 

팀푸-푸나카 고속도로

 

팀푸에서 푸나카로 가는 길엔 팀푸-푸나카 하이웨이를 지난다. 문제는 이 하이웨이가 하이웨이가 아니란 거다. 꼬부라진 길이 보이시는지. 나의 사랑하는 부탄인들은 산길 그대로 길을 닦아 고속도로라고 이름을 붙였다. 😁어딜 봐도 우리가 아는 고속도로는 아니다. 꼬불꼬불 가야 하니 당연히 속도가 나지 않고, 하도 커브를 틀어 멀미가 다 날 지경이다. 

 

도출라 패스에서 보이는 히말라야 산맥

 

멀미가 날 즈음 잠시 쉬어간다며 해발 3,150m의 도출라 패스에 차를 세웠다. 고도가 높은 이곳에선 저 멀리 히말라야 산맥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우리가 팀푸에서 푸나카를 향하는 날에도, 푸나카에서 파로를 향하는 날에도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이 비경을 마음껏 즐겼다. 

 

108개의 스투파가 인상 깊은 도출라 패스

 

도출라 패스(Dochula Pass)엔 108개의 초르텐이 있다. 인도로 향하던 반군과의 교전에서 전사한 부탄 군인들을 추모하는 108개의 탑이다. 여기서 한참을 서서 히말라야를 바라보다가 탑 사이사이에서 잠자고 있는 들개들을 발견했다. 부탄의 들개들은 어딜 가나 자고 있다. 아무리 햇살이 따뜻하기로서니 관광객들을 나르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는 이곳에서조차 말이다. 예뻐 죽겠다.

 



 

 

쌀쌀한 바람에 몸을 녹이러 도출라 패스 바로 옆 카페에 들어갔다. 안 들어가고 차에서 기다리겠다는 취미를 설득해 이곳에서 따끈한 커피와 달달한 쿠키를 먹었다. 푸르바와 취미가 마실 커피까지 함께 계산하려는 걸 한사코 말린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는 거라고 하니 그제야 오케이한다. 

 

거친듯 안전하게 운전하는 취미. 걸크러시 제대로다

 

도출라 패스 카페에서 뜨끈한 커피를 즐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 길은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인가 반쯤 해탈했을 즈음, 푸르바가 드디어 우리의 첫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릴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You two would love this place." 나와 여성 일행 우리 둘을 콕 찍어서.

 

Phallus는 남근이란 뜻이다
적나라하게(!) 그려진 남근들,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동네 정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온통 남근 투성이다. 차멀미로 어지럽던 속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다. 아 여기 너무 웃기잖아! 내가 들어도 너무 즐거운 목소리로 깔깔댔다. 크흡.

 

취미 라캉(Chime Lhakhang) 입구

 

남근 투성이 동네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올랐다. 취미 라캉(Chime Lhakhang)에 가기 위해서다. 취미 라캉은 "디바인 매드맨(미친 성자)" 드룩파 쿤리를 위해 세워진 절이다. 드룩파 쿤리(1455~1570)는 이 동네를 남근 투성이 동네로 만든 장본인으로, 일부러 방랑자의 모습을 하고 술과 여자, 사냥과 잔치에 탐닉한 불교 대가다. 동시에 불교의 수도적 질서를 포함한 기성 명령의 위선을 조롱한 사회 비평가였다. 드룩파 쿤리의 아주 별난 행동은 부탄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마를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도출라의 두려운 악마들을 복속시켰다고 하는데, 이들을 썬더볼트(금강저)를 이용해 천둥번개로 물리쳤고, 이때 사용한 썬더볼트를 보관하려 세운 절이 취미 라캉이라 한다. 취미 라캉 입구에 있던 영문 설명서를 해석했으니, 정확한 설명일 거다. 😆 

 



 

취미 라캉에 서 있던 거대한 나무, 스투파 보수작업 중인 스님들

 

취미 라캉은 현재 전 세계의 불교 신자들이 그들 아이들의 생존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찾는 명소다. 푸르바는 이곳을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부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 했고, 실제 절 내부에서 스님들에게 축복받는 부부들을 만났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남근'은 남사스러운 상징물이 아니라 악귀를 쫓는 상징임과 동시에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다. 절에서 나오기 전, 푸르바는 "사랑, 너도 아기 갖고 싶어?"라며 원하면 남근상을 메고 절을 돌라고 했지만 난 싫다고 거절했다. 애는 무슨, 난 자유롭게 살고 싶다구 푸르바야.

 

너무나 귀여운 부탄 고양이

 

취미 라캉에서 다시 남근 가득한 동네로 내려온 뒤,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길에 끝내주게 귀여운 고양이를 만났는데, 정말 집에 데리고 오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레스토랑엔 우리 말고 미국에서 온 가족 테이블도 있었고 이들은 나중에 다른 장소에서 한 번 더 만났다.

 

과거로 여행 온 듯한 기분으로 마신 부탄 맥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절에 두고 오는 차차

 

익숙한 부탄식 점심식사를 하고 한 시간 가량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우린 근처 카페에 앉아 한적한 부탄 마을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부탄 풍경은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날이 유독 그랬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 우리나라 시골 어딘가에 도착해서 그 시절의 맥주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 남근이 가득한 동네에서 차마 남근상은 사지 못했고 그 대신 차차 두 개를 샀다. 부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탁상 사원에 두고 오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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