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여행기간: 2018년 12월 14일~12월 21일
부탄의 수도, 팀푸에 도착하다
밥을 먹고 나오니 팀푸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식당 맞은편엔 농구 코트가 있고 그 뒤쪽으로 경기장이 보인다. 길에는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도 있고, 일반 복장을 한 사람들도 눈에 띈다. 가이드는 TV 영향을 많이 받은 젊은 층들이 전통 복장을 잘 안 입는다고 알려줬다. 이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 부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부탄의 생활에 계속 만족하며 살지 궁금하다. 어쩌면 한 20년쯤 후에 다시 부탄에 방문하면, '이야. 2018년에 처음 왔을 땐 완전 시골 같았는데 여기가 지금 이렇게 변했다구?' 할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에 한국에 왔었다는 네팔 아저씨가 내게 비슷한 말을 했다.)
부탄의 전통 복장은 여자가 입는 키라와 남자가 입는 고로 나뉜다. 키라를 입고 여행해도 되냐니 가능하단다. 우리나라에 오는 방문객들이 한복을 입고 고궁 체험을 하는 것처럼 나도 그래볼까 생각했는데, 생각에만 그쳤다. 치마라서 움직임이 자유롭지않을까 봐그랬는데, 에이 그냥 입을걸 그랬다. 할까 말까 고민되면 해야 한다, 특히 여행지에선.
식사 후 우린 은행에서 환전을 했다. 부탄 화폐 단위는 뉼트럼으로, 1뉼트럼은 약 17원으로 계산된다. 네팔에서도 부탄에서도 달러로 환전을 했는데, 나는 부탄에선 100달러를 환전했다. 은행 내에선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환전 후 묵을 호텔로 향했다. 한국에서 예약할 땐 여자 둘 더블룸, 남자 혼자 싱글룸을 쓰겠다고 예약했는데 현지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부탄에 오기 전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뒤 포카라에서 유유자적 5일을 보냈는데, 이때 각방을 쓰며 그 자유가 얼마나 큰지 서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 하나 추가하는데 1박마다 약 3만 원 정도가 추가됐다. 부탄 물가를 생각한다면 호텔 측에선땡잡은금액이지만 우리에겐 큰돈이 아니다. 온전한 자유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각자 방이 배정되었다. 내 방은 원래 두 명이 쓸 방이라 엄청 넓다. 푸르바는 지금부터 휴식시간이라며 1시간 후에 다시 온다고 한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눕는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까딱하다간 잠들겠다 싶어 정신줄을 붙든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우리 차가 도착했다. 걸어가도 될 거리를 차로 구불구불 내려가 유심부터 샀다. 중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아이 둘이 매장을 보고 있었다. 우릴 보고 긴장했지만 뭔가 들뜬 눈치다. 나는 앞으로 6박 동안 동영상도 맘껏 보고 인터넷을 마음껏 쓰고 싶어서 5,000MB에 499N짜리(8,500원 정도) 유심을 샀다.
우리 다음 일정은 우체국 방문이었다. 아까 환전할 때 갔던 그 건물이다. 걸어서 300미터쯤 되는데 또 굳이 차를 타고 우체국으로 이동한다. 😆히말라야를 걷고 와서 힘들까 봐 그러나 싶을 정도로 도통 걸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나저나 우체국은 왜...? 싶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의문이 풀렸다. 우리 사진을 넣은 우표를 만들어서 기념으로 간직하라는 거였다. 아 근데 비용이 세다. 한 장 프린트하는데 500뉼트럼이다(8,500원).
푸르바 표정이 뭔가 조마조마한 것이 안 하겠다고 말하면 울 것 같다. 그래, 시키는 대로 다 하자고 마음먹고 사진을 찍었다. 우체국에 어색하게 서서. 😂
우체국에서 나와 또 10분 정도나 달렸을까?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음날 시내가 눈에 익은 후부터 동선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도시 간 이동을 제외하곤 일부러 동선을 길게 길게 잡는 듯했다. 서울로 따지면 홍대 갔다가 강남역 갔다가 상암동 갔다가 잠실 갔다가 다시 용산 가는 느낌? 😁워낙 동네가 아담해서 그렇게 일정을 잡았겠구나 생각했다. 만약 가까운 순으로 돈다면 점심 먹기 전 모든 일정이 끝날지도 ㅎㅎ
아무튼,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타시초 종(Tashichho Dzong)이다. 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 수도원이자 요새이며 부탄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1772년에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다시 건축했다고 한다. 현재는 왕실과 집무실, 국무조정실, 행정자치부, 재정부 등이 입주해 있다. 이 종을 등지고 아래를 내려다본 곳엔 의회도 있었다. 행정업무를 보는 곳과 사원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우린 사원만 볼 수 있었다(역시나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
타시초 종 입구에서는 경비들이 몸수색을 하고 짐 검사를 했다. 수색을 마치고 사원 구역으로 들어갔다. 사원 외부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무조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내부는 우리 절과 비슷하게 생겼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탄 국왕과 대승이 자리하는 곳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 부탄에서 불교는 종교 그 이상이다.
내부에선 불교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왕자로 태어난 부처가 수행을 하고 고난을 겪고 깨달음을 얻어 입적하기까지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불교를 잘 모르지만 들어봄직한 내용들이라 흥미롭게 들었다. 여기서 첫 번째 부처 석가모니와 두 번째 부처 파드마 삼바바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여느 종교처럼 유일신을 믿지 않는 불교. 푸르바는 이들을 입지전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부르는 것일 뿐이지, 석가모니나 파드마 삼바바를 신처럼 믿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줬다. 부처는 어디에나 있다는 이야기로 첫날 일정이 끝났다.
일정이 끝나고 호텔에 데려다줬지만 우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걸어 나갔다. 셋 다 걷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차 타고 다니느라 보지 못했던 부탄인들의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구글에 호텔 위치를 찍고 차로 올라온 길을 거꾸로 내려갔다. 12월이라 여섯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어둡다. 저녁이 되며 상점에 불이 켜졌고, 평범한 부탄인들의 삶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 그래 이거야! 이걸 보러 온 거라고. 😆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곳은 정육점이다. 여기서 닭고기부터 수산물까지 취급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가장 많았다. 아마도 저녁거리를 사러 나왔을 부탄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생을 금하는 부탄에선 식육용 고기를 주로 인도에서 수입해 들어온다. 한편 정육점 앞 길에 들개들이 모여서 뭔가 열심히 하길래 가까이 가봤더니, 정육점에서 일부러 갖다 놓은 고기 부산물들이 보였다. 너넨 정말 포식하는구나. 날파리도 잡지 않는다는 부탄에 사니, 동네 개와 고양이에겐 분명 천국 같은 곳일 테다.
빵집도 들렀다! 😁일행 두 분은 심드렁한 표정이지만, 잠깐 기다리시라 하고 빵집 문을 열었다. 낯선 외지인을 본 주인아주머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쿠쥬산폴라'라고 인사를 드리고 몇 개 사 먹을까 고민하다가 크림롤 하나를 35뉼트럼(600원 정도)에 샀다. 아주머니는 내가 갈 때까지 기뻐하는 기색을 내비치셨다. 아 뭔가 엄청난 환대를 받는 느낌이다.
나오자마자 롤 한입을 베어 물었다. 맛은 음.. 빵만큼은 입맛이 고급인데 역시나 성에 차지 않았다. 솔직히 성에 차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뜨악스러운 맛이었다. 아니 크림에서 크레파스 맛이 난다니까! 쇼트닝이 입안을 코팅하는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과일 채소 가게를 구경했다. 역시 시장 풍경은 여느 곳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린 과일이나 좀 살까 하다가 문득 호텔 저녁식사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아쉽지만 내일 또 구경해야지 마음먹고 호텔로 향한다.
부지런히 호텔을 향해 오르다가 운 좋게 술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유레카! 😆오늘의 회포를 풀려면 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술은 온리 부탄산만 판매 중이었다. 얼핏 화이트 와인처럼 보이는 줌진(zumzin)은 복숭아로 만든 와인인데, 맛은 혀가 아릴 정도로 달다. 달아서 홀짝홀짝, 본의 아니게 아껴 먹게 된 와인이다. 레드와인은 맛이 깊진 않지만 아무 풍미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으며, 맥주는 내가 가장 많이 마셨다. 특히 드룩11000💓상점에서 직접 구입하는 술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쌌다. 줌진이 2천 원쯤 했던 것 같으니 말 다했다.
호텔에 돌아온 우리는 불과 하루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익숙해진 부탄식 저녁식사를 먹었다. 그렇게 첫날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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