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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회 충격의 연속

이어즈&이어즈

 

 

이래서 드라마는 함부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저녁 먹으면서 잠깐 보려고 했던 드라마를 시즌 1 끝까지 보고야 말았다. <이어즈&이어즈> 이야기다. 총 6개 에피소드는 매회 충격적이고 전개가 빠르다. 하나 보고 나면 다음 편이 궁금해 끊을 수 없는 드라마다. 정주행 마력으로 보자면 <프리즌 브레이크>나 <24시> 이상이다. HBO와 BBC가 미친 드라마를 만들었다.

 

영국에 10년 넘게 거주하던 지인이 한 말이 있다. 그동안도 수없이 병신 같았지만 브렉시트 결정하는 거 보고 영국에 정이 다 떨어졌다고. 결국 그 지인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의 말처럼 사실 브렉시트 자체가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그걸 영국인 자신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어즈 앤 이어즈>의 배경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이다. 이야기는 영국 중상류층에 가까운 라이언스 가족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홀로 사는 할머니 뮤리얼, 급진주의 운동가 이디스, 금융 전문가 스티븐, 정부 소속 주택 관리원 대니얼, 척추후만증으로 휠체어를 탄 미혼모 로지, 그리고 스티븐의 회계사 아내 셀레스트와 '트랜스 휴먼'이 되고자 하는 딸 베서니 등이 라이언스 가족이다. 

 

 

라이언스 가족과 거의 접촉이 없는 또 다른 주요 인물로는 '비비언 룩'이 등장한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조니 미첼의 음악을 사랑하고 오빠가 영국 수상이며 바람난 남편을 둔 역을 맡은 엠마 톰슨이 비비언 룩 역할을 맡았다. 그는 야심 찬 기업가로서 민족주의 정치가가 된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이나 미국의 트럼프를 떠올리게 하는 무례한 캐릭터다. 그의 황당한 공약들과 자극적인 선동들은 어찌 된 일인지 영국 국민들을 혹하게 만들고, 사성당을 만들며, 결국 수상에 선출된다. 

 

 

비비언 룩은 2019년 시사 토크쇼를 통해 첫 등장한다. 그는 난민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I don't give a fuck)는 거침없는 발언을 한다. 난민 문제에 반대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부 영국인들의 주목을 받는 순간이다. 그렇게 비비언 룩은 화끈한 언변과 돌출 행동으로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킨다. 

 

 

 

 

그로부터 5년 후, 뮤리얼의 생일날에 모인 가족들은 미국이 중국의 인공섬 '홍샤다오'에 핵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긴급 속보 뉴스를 듣는다. 이때부터 <Years&Years>의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제발 그만, 설마 여기서 더? 싶어질 때마다 더 극한 상황이 주어지고 영국인들의 삶은 급속도로 추락한다. 

 

 

'홍샤다오' 섬에 핵무기가 떨어질 때 근거리에서 취재를 하던 이디스는 방사능에 피폭된 상태로 영국에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온 후로 미친 급진주의자 '비비언 룩'을 무너뜨릴 결심을 한다.

 

 

한편 어느 날 갑자기 세계 증시가 급락하면서 은행이 파산하고 만다. 은행 시스템에 가장 충실했던 스티븐은 고임금의 직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어 할머니 뮤리얼 집으로 들어간다. 무능력한 긱 이코노미(임시직)의 일원이 되어 8개나 되는 직업을 유지하게 되는데, 그중 대부분은 자전거 배달일이다. 아내 셀레스트는 유능한 회계사였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는다.

 

 

그들의 딸 베서니는 '트랜스 휴먼'이 되기 위해 눈이 뽑힐 뻔한 상황에 마주하고, 정부 소속 주택 관리원 대니얼은 이혼까지 불사하며 우크라이나 난민 빅토르와 사랑에 빠진다. 영국의 봉쇄정책으로 빅토르가 추방당하게 되자 그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가족 중 '비비언 룩'에 가장 반대해야 할 사람인 로지는 오히려 비비언의 언사에 매료되어 열렬한 팬이 되지만, 그의 인종청소와 사회 봉쇄의 희생자가 된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다음 에피소드 내용을 예상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냥 흐름에 맡겨도 버거울 정도로 내용이 급격하게 흐른다. 결말에는 베서니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결국 다른 이가 얻는 듯한 모습으로 끝난다. 과연 저때쯤에 저 기술이 정말로 실현될까 기대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싹해진다.

 

 

최근 코로나에 대처하는 각국의 모습을 보면 내가 알고 있던 선진국이 진정한 선진국인지, 그들이 말하는 '요람에서 무담까지'가 대체 무엇인지, 그저 만들어낸 복지국가 이미지에 불과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묘하게도 <이어즈앤이어즈>의 몇몇 장면은 현재 상황과 오버랩된다. 집단 감염이 더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전문가와 그 전문가의 말을 믿고 집단 감염을 선택한 '소위' 복지국가들. 이 시국에 '내 몸은 내 것'이라며 자유를 외치는, 자유의 진정한 뜻도 모르는 듯한 사람들. 자신이 기득권이라 생각하고 기득권 측에 투표하지만 정작 뒤통수 맞는 멍청한 '기득권 아닌' 사람들. 

 

나는 아직도 이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을 들으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어즈 앤 이어즈>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에 당신도 빨려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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