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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은 곳

제주 중문 이정의댁

 

 

지난 제주 여행에 들른 곳들은 거의 모두 마음에 들었다. 좋은 곳에서 자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그중에서도 가장 맘에 드는 곳을 꼽으라면 난 <이정의댁>을 꼽겠다.

 

 

이정의댁은 중문에 있는 카페 이름이다. 이름이 특이해서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매장에 계시던 사장님께 직접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이정의'는 사장님 할머니 성함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할머니 성함을 따서 카페 이름을 지은 거다. '이정의'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고 시대를 타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같다. 우리 할머니 두 분 성함은 '김순이'와 '민향식'이다. '김순이'는 40년 전통 순댓국집에 내걸면 딱일 것 같고, '민향식'은 너무 유니크하다. '민향식집'이라 하면 <민물고기 향토 요릿집> 뭐 이런 느낌이 난다. 양식집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훗날 손녀가 내 이름을 따서 카페를 열만큼 멋진 이름. 그럼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게 되겠지. 주인장이 이런 생각으로 지었는진 모르겠지만 이름을 내준 할머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 낭만적이다.

 

 

여긴 꼭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처럼 생겼다. 정말 창고를 개조한 건지 아닌 지는 알 수 없지만. 새 건물에 번쩍번쩍하게 지은 곳들은 마냥 남 이야기 같은데, 원래 낡은 모습과 어울리게 적절히 개조한 곳들을 보면 왠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은 신축보다 더 까다롭겠지만 어쨌든. 세컨드 하우스를 갖게 된다면, <이정의댁> 정도의 규모에 이 정도 인테리어면 꽤나 만족스러울 것 같다. 땅값이 문제지 뭐.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공간에도 첫인상이 있다. 첫걸음을 들여놓았을 때 한눈에 담기는 모든 사물이 순식간에 그 공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다. 여기엔 딱 알맞은 조도와 향기, 음악까지 모든 것들이 작용한다. 특히나 카페는 단순히 커피나 디저트를 먹기 위한 공간 이상이다. 이정의댁 입구에는 깨진 화분에 심어진 보스턴 고사리가 있었다. 길가에 누가 버려놓아도 안 집어갈 만한 화분인데, 그 화분이 햇살 드는 입구에 너무나 멋들어지게 어우러졌다. 화분을 보는 순간 여긴 정말 마음에 들겠구나 했고, 실제로 그랬다.

 

 

음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카페에 <멜론 탑 100>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면 다시 밖으로 나온다. 음악만큼 음질도 중요하다. 대단한 음질 말고 적어도 째지거나 웅웅 거리는 소리는 못 참겠다. 그건 기본이라 생각하는데.. 우리 동네에 몇 년 동안 영업한 디저트 카페가 있었다. 딱 한 번 간 적이 있었는데 잠시 있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음악에 에코를 잔뜩 깐 것처럼 묘했다.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곧 견딜 수 없게 짜증스러웠다. 어느 날 보니 그 자리에 새로운 디저트 카페가 들어섰다. 새로운 인테리어와 새로운 이름으로. 기대를 안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원래 주인이 그대로 운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코 깔린 듯 웅웅 거리는 이상한 스피커 때문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뭐 그런 것까지 까다롭게 굴까 하겠지만 난 반대로 묻고 싶다. 그 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왜 눈치 못 채는 거지? 

 

 

만약 카페 창업을 준비한다면,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카페를 창업하고 싶다면 <이정의댁>처럼 자신의 감각을 모두 담아낸 곳을 가 봐야 한다. 이런 곳들을 많이 다녀야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지 깨닫게 된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검색하는 건 충분치 않다. 이 방법으론 놓치는 게 많다. 카페에 흐르는 음악, 바닥마감재, 소품의 어울림, 조도 등은 직접 눈으로 담아야 한다. 이정의댁의 스피커는 조적을 일부러 부순 자리 아래에 놓여 있다. 저 아이디어가 누구에게서 나왔을까.

 

 

카페 하나 차리기는 어렵지 않지만 제대로 된 카페 차리기는 쉽지 않다. 한집 건너 다른 집에서도 볼 수 있는 인테리어와 소품, 식기들이 리스트에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카페는 너무나 많다. 뻔한 공간을 차려놓고 재방문을 기대한다면 커피나 디저트가 끝장나게 맛있거나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음질 때문에 재방문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생긴다. 아, 또 있다. 카페에 레일등을 많이 설치하는데, 오픈하고 시간이 흘러 전구가 나간 자리에 주광색 전구를 끼운 경우를 정말 흔하게 봤다. 하 이것도 정말 미춰버리겠는 부분이다. 쉬러 가는 공간에 주광색이라니. 스타벅스를 보시라. 파트너 공간을 제외하고 그 어느 곳에도 주광색 등은 없다.

 

 

물론 테이크아웃 전문점은 저렴하고 맛만 있어도 된다. 그러나 테이블이 있는 카페는 공간을 파는 곳이다. 그 공간 안에 커피도, 디저트도, 음악도, 인테리어도 있다. 이정의댁은 공간만큼 디저트도 멋졌다. 쇼케이스를 한참 보다가 도저히 하나만 고르긴 어려워서 디저트 두 개를 골랐다.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디저트 두 개를 다 먹어버리고도 아쉬워서 하나 더 주문했다. 너무 달았으면 못 먹었을텐데 그렇지 않았다. 

 

 

두 번째로 주문한 디저트는 특이했다. 위에 설탕을 뿌려져 있고 즉석에서 토치로 캐러멜을 만들어준다. 영상 캡쳐하다가 발견한 것 하나, 직원 손톱이 큐티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다. 그렇다. 나처럼 편집증 환자마냥 보는 손님이 있단 말이다. 그렇게 보려고 해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보인다. 요즘처럼 사진과 영상이 많이 공유되는 시대엔 특히 위생과 청결 부분만큼은 철저해야 한다. 

 

 

 

모든 게 완벽했던 집, 이정의댁. 다시 글 서두로 돌아가서, 나중에 컨셉이 분명한 음식점을 하게 된다면 -그럴 일 없지만- 이름을 <민향식집>으로 짓겠다. 초반엔 너무 향토 요릿집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갖다 붙여도 꽤 근사하다. 이태리 음식점이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갈 때마다 뇨끼를 만들어주시던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만든 이름이에요.' 꽤 그럴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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